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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

시놉시스

대대로 이야기를 전하던 수도승이었던 파르나서스에게 어느 날 악마가 찾아와 이야기를 전하지 않으면 영생을 주겠다고 말한다. 악마의 제안을 수락한 그에게 주어진 것은 영원한 생명과 늙음이라는 추함이었다. 어느 날 아주 젊고 아름다운 여인에 반한 파르나서스는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 악마를 찾아가 영생을 포기하는 대신 젊음을 얻는다. 여인의 사랑을 얻어 결혼하게 된 파르나서는 딸 발렌티나를 얻게 된다. 하지만 악마가 다시 찾아 온다. 딸 발렌티나는 젊음의 대가로 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열여섯 번째 생일에 발렌티나를 데려가기로 한다. 악마와의 약속 일이자 딸 발렌티나의 생일을 삼 일을 남겨두고 악마는 파르나서스를 찾아와 새로운 제안을 한다. 다섯 명의 영혼을 먼저 얻는 시합을 제안한다. 악마의 제안을 수락 하지만 그의 극장은 이미 오래되고 낡아서 손님을 끌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목숨을 구해주게 된 토니라는 남자는 낡고 허름한 파르나서스의 상상극장을 현대적인 무대로 바꾸고 손님들을 모이게 하는데. 그날까지 다섯 명의 영혼을 얻으려 파르나서스 박사는 다시 상상극장을 열게 된다. 악마와의 대결에서 승리해 딸을 지켜낼 수 있을지 파르나서스 박사는 상상극장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상상 극장의 입구, 거울

아름다움에 관해서 미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모범이 되었던 것은 자연과 인간이었다. 자연에서 아름다움을 빌려 온 전통으로 생각해보면 세상이 창조된 느낌과 같이 보이는 순간일 것이고, 인간의 아름다움을 상징했던 비너스라면 그녀의 몸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의 아름다움은 어디서 시작되는 것일까?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세상의 생성과 소멸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움도 우리 자신이 태어난 순간 함께 태어난다는 것을. 그렇다면 상상은 언제 시작되는가? 기묘하고도 괴상한 상상력을 자랑하는 팀 버튼 감독보다는 조금은 아름다운 상상의 세계를 선사하는 테리 길리엄 감독의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은 이에 관한 대답과도 같은 영화다.

오랫동안 상상의 공간은 종교와 신화의 것이었다. 상상의 공간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신앙적인 믿음과 도덕성 그리고 인간적인 것들을 초월한 의지가 요구됐다. 신의 뜻에 따라 살다가 언젠가 가게 될 이상적인 세계 속에 자신을 데려가 잠시나마 천국의 단맛을 느끼기도 하며, 신의 대리인으로서 영웅적인 서사를 완성해 보기도 한다. 상상은 현실의 층 위의 관념적인 것이었다. 그러다 대항해시대에 이르러 신대륙의 발견으로 실제 세계에 새로운 이상 세계를 실현해 볼 수 있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그러나 신대륙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용기뿐만 아니라 막대한 돈이 필요했다. 아무나 엄두를 낼 수는 없었다. 종교 시대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상상의 공간은 평등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꿈의 평등은 전신 거울과 철도가 등장하는 18세기에 이르러서야 실현되었다. 거울을 통해서 자신의 전체적이고 구체적인 모습이 발견되고부터는 이상적인 세계는 이전과는 다르게 구축될 수 있었다. 이상 세계로 진입하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이 순수한 영혼과 같은 관념적인 것이었다면, 거울을 통해서는 확인된 자신의 실제 모습과 같은 물리적인 육체가 입장권이 될 가능성을 열어주었던 것이다. 이상 세계의 모습도 종교와 신화가 설정해 놓은 관념적 공간이 아니라 현실세계에서 본 것 중에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구축해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인상주의 화가들에게도 그랬었지만, 이 즈음 사람들에게 상상의 재료가 되어 준 것은 동양이었다. 동양에 관한 신비주의적 상상은 유럽인들에게 유행이 되었으며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은 열망은 철도가 동양 언저리까지 놓이게 된 이유가 되었다. 처음 철도가 놓였을 때 속도가 7킬로였지만 18세기에 중후반기에 이르러 70킬로 가까이 빨라지자 서유럽에서 저 멀리 터키까지 여행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에서도 파르나서스 박사가 수도승일 때에 있었던 곳이라 생각되는 곳은 터키 혹은 아제르바이잔이나 조지아, 아르메니아 지역의 모습을 닮아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 상상공간 속으로 들어가게 해 줄 입구에 서 있다

 

상상극장의 입구는 거울이다. 팀 버튼 감독의 거울나라의 앨리스와 마찬가지로 테리 길리엄 감독도 거울을 입구로 사용하고 있다. 거울이 이들 감독에게 어떤 의미로 영화에 쓰이는지를 알아야 영화를 이해할 수 있기에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나를 발견하는 방법은 종교나 국가와 같은 집단적 관점에서 출발해 개인으로 좁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사회라는 집단에 함몰된 개인은 드러나기 쉽지 않다. 그러나 거울은 이 관점에 혁신적인 전환을 이끌어 냈다. 거울은 자기 반영성(self-reflexivity)이라는 개별적 관점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거울이 그렇게 할 수 있게 한 매력적인 이유가 있었다. 거울은 자신의 못난 점을 감출 수 있게 했으며 선택적으로 아름다운 구석을 보게 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 개인은 신이나 사회에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가가 중요했다면 거울은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나르시시즘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했던 것이다. 이런 혁신적인 전환을 가져다 준 거울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거울아! 거울아! 누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우니?”라는 물음은 동화에서만 일어났던 일이 아니었다. 자신의 잘난 점을 보고 싶어 하는 욕망은 마음 깊은 곳에 침투해 언제든 거울 앞에 자신을 소환하게 했다.

 전신 거울이 없었던 시절에는 왕이나 귀족, 혹은 재력가들이 화가들에게 초상화를 그리게 해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이런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정확히 확인할 수 없었다. 현대적인 거울이 등장한 18세기 이전에 거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물에 비춰 보기도 하고 작은 청동 손거울이나 값비싼 은제 거울도 있었다. 보다 크게 자신의 모습을 확대해 보기 위해서 철제 볼록 거울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이런 거울들은 어느 한 부분만 볼 수 있어서 전체 모습으로 자신을 구성해 볼 수는 없었다.

싼 값의 전신 거울이 등장하면서 대중적이게 된 나르시시즘은 상상공간의 전환을 가져왔다. 자연과 종교, 신화에서 아름다움을 끌어왔다면 거울로 자신을 확인하게 되면서 아름다움의 주체는 자신이 된 것이다. 상상 공간의 주체가 되자 재구성하려는 욕구가 생겨났다. 오랫동안 상상공간은 이미 존재해 있고 그곳에 자신을 끼워 맞추어야 했다면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입는 것처럼 상상의 세계도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갖추고 싶어 했다. 차이는 있지만, 팀 버튼과 테리 길리엄 감독의 상상공간은 이런 배경에 의해서 창조된 곳이다. 이제 거울 안 상상공간으로 들어가 보자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공간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공간은 미술 작품에서 가져온 이미지들을 참고해 창조됐다. 미술사적인 맥락으로 보자면 종교화나 벽화들이 종교와 신화에 근거해 그려졌다면, 근대에 이르러서는 거울을 보게 된 개인들과 마찬가지로 화가들도 자신들의 심리 상태나 욕망, 죄의식 등의 자기 반영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테리 길리엄 감독도 영화에서 이상적인 세계를 자기 반영성(Self-reflexivity)을 높게 실현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르네상스 시대 예외적인 그림을 그렸던 히에로니무스와 인상주의 화가인 르누아르와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 세 화가의 그림들로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공간을 창조했다. 르누아르의 아름다운 빛깔은 공간을 채색하고 히에로니무스의 기괴함처럼 물체들을 조형하게 했으며 상상공간으로 입장하는 사람의 욕망이나 죄의식에 따라 색채와 공간은 달리의 작품처럼 조율되게 했다. 이 환상적인 공간은 스토리와도 조응된다.

영화의 촬영지가 영국의 런던인 이유는 스토리와 관련 있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의 소설들 속 인물들로 영화의 캐릭터들을 조합했기 때문이다. 위대한 유산에서의 두 남녀, 크리스마스 캐럴에서의 스크루지 영감과 조카, 올리버 트위스트의 순수함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올리버, 자전적인 성공담인 데이비드 카퍼필드의 데이비드, 혁명의 시대였던 영국과 프랑스라는 두 도시에서 펼쳐지는 두 도시 이야기를 교묘하게 녹여냈다. 이야기의 결말은 그래서 디킨스적이다

수많은 나뭇가지에는 개별적인 서사가 있게 마련이다. 비바람에 부러져 더 이상 자라지 않게 되기도 하고, 꺾여 다른 방향으로 자라기도 한다. 틔운 잎은 저마다의 계절에 찾아온 벌과 벌레들의 먹이가 되어주기도 하며, 피워내지 못한 꽃도 있고, 열매를 맺어 새가 날아와 물고 가기도 하며, 어떤 열매는 땅에 떨어져 뿌리를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나뭇가지 저마다의 서사는 기나긴 나무의 생명력에 흡수된다. 우리가 나무를 볼 때 그렇듯이 개별적인 나뭇가지의 서사는 보이지 않게 된다. 소설의 구성 단계와 마찬가지로 이야기는 나뭇가지와 같은 유한성에 기반하고 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보여야 하는 것이 서사다. 그리고 서사는 개별적이어야 한다. 나무에서 가지 하나를 분리해 내는 것처럼 인생에 관한 서사도 무한성이 아니라 유한함에서 가져와야 서사로서의 흥미와 매력을 갖게 된다. 파르나서스 박사가 스토리를 포기하는 대신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가 다시 젊음을 되찾아 발렌티나라는 영화적 스토리를 얻는 것과 마찬가지다. 거울과 상상공간 그리고 영화의 스토리는 이렇게 조응하고 있는 것이다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은 히스 레저의 유작이다. 영화 촬영 도중 사망한 그를 대신해 토니 역을 번갈아 가며 연기한 조니 뎁, 주드로, 콜린 파렐이 영화를 완성했다. 상상 극장은 미술적인 볼거리와 훌륭한 배우들의 연기와 더불어 디킨스 적인 결말로 깔끔한 맛을 가지고 있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도 있는데, 상상세계의 입구가 왜 거울이어야 하는지 그리고 거울 뒤편에서 펼쳐지는 상상세계의 시각적인 볼거리가 왜 그렇게 제공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서 시각적 맥락을 관객이 놓치게 했다는 점이다. 살바도르 달리의 볼썽사나운 개인사인 나치 제복의 예찬을(영국 경찰 제복으로 대체하기는 했지만) 굳이 넣을 필요가 있었는지에 관해서도 의문이다. 다른 영화들에 비해서 오락적인 재미가 두드러지지도 않으며, 몇몇의 결점이 있음에도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는, 상상을 시각적으로 보여준 것에 있다.

현실 도피를 위한 공상이 아닌, 바람직한 미래를 창조해내고 싶은 욕망에서 출발한 상상은, 관습적으로 정해진 사고의 흐름에서 벗어나 전혀 엉뚱한 미래로 나아가게 하기도 한다. 그것이 자신만의 일일 수도 있고 때로는 인류 전체의 변화가 되기도 한다. 그런 상상이 가능하기 위해서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상상할 때 간과하기 쉬운 어떤 못난 점을 놓치지 말게 하며, 상상의 재료가 되는 것을 어떻게 선택하고 조율하는지 보여주려 했다. 그리고 그 상상의 결과물을 삶의 서사로 환원시켜야 현실로 끄집어낼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테리 길리엄 감독만이 이것을 말한 것은 아니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난 사람은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였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혁신적인 제품을 세상 사람들의 서사와 결합해서 현실로 끄집어낸 대표적인 사람이다. 인터넷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 프레젠테이션을 보면 알 수 있다. 아이폰의 개발 동기는 기존 제품들의 못나고 불편한 점들이었다. 그것을 바꿀 몇몇의 기능들을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상상 속에서 조합되고 그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을 현실로 끄집어 내기 위해서 사용자의 일상생활에서의 이용습관이라는 이야기로 현실과 조응하게 한다. 그 상상의 과정을 거쳐 아이폰이 탄생한 것이다. 영화의 상상공간과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 프레젠테이션이 일치하는 지점이다

스티브 잡스를 흠모하는 어떤 사람들은 그의 말을 “명언”이라고 하면서 수집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말은 이미 생산해낸 제품의 재료였을 뿐이다. 그가 그렇게 했다고 해서 미래의 재료로 삼으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이미 그것은 과거의 재료였기 때문이다. 혁신을 이끌어낸 스티브 잡스의 생각을 배우고자 한다면 그의 말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고 과정과 구조를 알아야 한다. 영화가 꼭 스티브 잡스의 사고 구조를 염두에 두고서 촬영된 것은 아니겠지만, 영화는 우리의 상상이 현실로 되게 하는 그 지점을 보여주고 있다

오래전, 예술의 존재 이유는 아름다움을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또 다른 시대에는 신앙에 의한 도덕적 품성과 지성을 고양시키기 위해서였으며, 근대에 이르러서는 내면이 포착했던 즉각적이고 감각적인 아름다움을 제공하기도 했다. 현대 예술은 심리적이며 철학적인 것으로 변모해서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리 떨어져 나간 듯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현대 예술은 여전히 우리에게 제공할 무엇이 있다. 현대 예술이 양식과 의도의 차이가 천차만별이지만 누군가에게 상상의 영감을 주는 재료가 될 수 있다고 이 영화를 통해서 다시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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