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讀書)

2018.04.30 17:40 460

독서(讀書)

 

[명사] 경청 행위 중 가장 적극적이며 지루한 것. 좋다는 건 알지만 남에게만 시키려는 특징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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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자체가 무조건 좋다고 말할 수는 없어. 훌륭한 책도 많지만 오히려 왜곡된 정보로 편협한 생각을 심어주는 책도 많거든. 모든 책이 다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얘기야.

 

 

하지만 독서행위 그 자체는 대체로 다 좋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설령 어떤 책을 읽든간에 말이야. 왜냐하면 독서란 타인의 생각을 이해해보려고 애쓰는 경청이거든. 좀 더 풀어서 말하자면 독서란 작가가 혼자 떠드는 걸 몇 시간, 혹은 며칠 동안 꾹 참고 들어내고야 마는 난이도 보스급의 경청행위라 할 수 있는 거지.

 

 

작가가 설령 개소리를 사람의 말로 적어 놨다 할지라도, 그걸 이해해보려 애쓰는 경청인 독서행위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거야. 설령 이해해보니 개소리였다 하더라도 전혀 속상할 필요 없어. 개소리인지 아닌지 끝까지 이해해보려 했던 그 노력에 스스로 충분한 자부심을 가지면 되거든. 제자리 뛰기가 위치에너지 상으로는 무의미할지라도 운동에너지 상으로는 큰 의미가 있는 거니까 말이야.

 

 

그런 면에서 흔히들, 특히 부모가 아이들에게, 독서를 진학과 취업의 도구쯤으로 이해하는 건 좀 위험한 생각인 것 같아. 앞서 말한 것처럼 독서의 본질은 경청이야. 그러니까 책 읽기란 남을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한 도구일 뿐이라는 거지. 그러니까 책 읽기 자체가 본질이 아니라, 남의 생각을 이해해보려는 애정과 관심이 근본인 거고, 애정과 관심으로 책을 읽을 때 독서의 진가가 발휘된다는 얘기인 거야.

 

 

최근 이와 관련해 큰 울림을 준 방송이 있었어. 모 방송사의 ‘영재발굴단’이라는 프로그램이었지.

 

 

희웅이.jpg

 

제목에 걸맞게 대한민국의 어린 영재를 발굴, 소개하는 방송인데 이 방송에서는 영재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영재의 부모도 조명하더라고. 영재에게는 반드시 특별한 부모가 있을 거라는 가정 하에.

 

 

아니나 다를까, 불과 여덟살의 나이에 화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희웅이의 부모는 이 방송에서 테스트한 일종의 '영재부모 자격시험'에서 사상 최고의 점수를 받아. 놀라운 일이었지.

 

 

희웅.jpg

 

하지만 정말 놀라운 건 그 다음 밝혀진 사실이었어. 희웅이의 부모는 사실 청각 장애인이었다는 거야. 엄마 아빠 모두.

 

 

뛰어난 아이에게는 뛰어난 부모가 있을 거고, 뛰어난 부모라면 아이의 재능을 조기 발굴할 수 있는 뛰어난 감각과, 아이를 격려하고 채찍질 할 수 있는 뛰어난 언변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게 일반인의 상식이잖아. 하지만 희웅이 부모는 애초 그게 불가능했던 거야.

 

 

근데 ‘불가능’은 나같은 정상인의 비정상적 생각이었던 거지. 희웅이 부모에겐 들리지 않는 게 불가능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던 거야.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의 입모양을 보며 말을 이해했고, 잠시라도 한 눈을 팔면 이해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아이가 말 하는 동안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아이의 말이 끝날 때까지, 그야말로 누구보다 더 집중해 경청을 했던 거야. 귀로 하는 경청이 아니라 온몸과 온영혼으로 하는 경청.

 

 

 



 

근데 대부분의 정상적(?) 부모는 아이들의 말을 경청하지 않고, 마음을 이해하려 애쓰지 않으면서 닥치고 독서, 닥치고 공부를 강요하곤 하잖아. 이건 모순된 거야. 오히려 독서의 미덕을 해치는 걸 수도 있는 거지.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은 이해받지 못하면서 남을 이해하라며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듣는 꼴이니까.


 

아이에게 독서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싶다면, 책을 권하기 전에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듣고,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먼저일 것 같아. 이해받으며 자란 아이가 남을 이해하는 데도 탁월할 테니까. 그리고 아이는 반드시 부모를 따라하니까.

 

 

 

<오만과 편견>/제인 오스틴/윤지관, 전승희/민음사

 

참고로, 독서의 미덕과 관련해서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추천하고 싶어.

 

 

어쩌면 의아해할 수도 있겠어. <오만과 편견>은 오만한 남성과 그 오만함 때문에 편견을 갖게 된 여성간의 드라마틱한 애정사를 그린 소설로 유명한데 왜 독서와 관련이 있냐는 건지 말이야.

 

 

이유는 간단해. 당시 재력과 지력에 외모까지 겸비한 최고의 남편감 다아시가 다른 럭셔리한 여성들 대신 별 볼일 없는 집안의 여주인공 엘리자베스에게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바로 그녀의 인습에 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함, 그리고 유머와 날카로움을 겸비한 총명함 때문이었어.

 

 

그리고 그런 자유분방함과 총명함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건 아니야. 평소 그녀의 독서습관에서 비롯된 바가 크거든. 그러니까 다양한 독서를 통해 시사상식에 정통한 퀴즈왕이어서 매력적이었던 게 아니라, 인습이 갖는 모순들을 발견하고 그딴 모순에는 억매일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고 실천함으로써 진짜 지성을 갖었기 때문에 사랑받는 여인이 될 수 있었던 거야.

 

 

결국 <오만과 편견>이 독자에게 주는 거대한 교훈중 하나가 바로 이거인 셈이지.

독서는 연애에도 도움이 된다!

 

 

소심하게 덧붙이자면, 책에 대한 책이라 할 수 있는 <고전문학 읽은 척 매뉴얼>도 좋아. 오해하지는 말아줘. 내가 쓴 책이라서 좋다는 게 아니라, 내가 좋은 책들을 소개하기 때문에 좋다는 거야.

 

반드시 좋은 책으로 독서를 시작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고전 중에서 골라볼 것을 추천해. 수많은 사람들이 시공을 초월해 이미 검증한 책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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