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감(存在感)_2

2018.03.30 11:12 396

존재감(存在感)_2

 

[명사]존재하므로 느끼는 감각. 나에 의한 존재감과 남에 의한 존재감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방식에 따라서는 빛의 존재감과 어둠의 존재감으로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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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과 달리, 나는 존재감을 이렇게 정의하고 싶어.

 

 

존재감(存在感)

[명사]존재하므로 느끼는 감각. 나에 의한 존재감과 남에 의한 존재감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방식에 따라서는 빛의 존재감과 어둠의 존재감으로 나눌 수 있다.

 


 

1)존재하므로 느끼는 감각

 

 

솔직히 존재하므로 느끼는 건지, 느끼므로 존재감이 생성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어. 존재하니까 느끼는 게 순서일 것 같은데, 역으로 아무 느낌(오감과 상상력 포함)이 없는 뭔가의 존재감이란 건 애초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아.

 

 

존재와 존재감은 다른 거라서 그럴 거야. 이를테면 공룡 화석이 발견되기 전 아무도 공룡을 몰랐을 때, 공룡은 존재했지만 공룡의 존재감은 사람들에게 존재하지 않았던 거지. 물론 지금도 공룡의 존재 여부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치면, 화석이 발견됐을 뿐만 아니라 영화 <주라기 공원>이 여러 편 나왔어도 그 사람에게는 여전히 공룡의 존재감 따위 없는 거고 말이야.

 

 

그러니까 공룡의 존재는 누가 알든 모르든 사실로 명백히 존재하지만, 공룡의 존재감은 누가 알아줘야만 생성되는 상호관계의 조건부 결과라는 거야. 단적으로 얘기해 앎이 없으면 존재감은 없는 거라고 말할 수도 있는 거지. 얼마나 아느냐에 따라 존재감의 내용과 성격도 달라질 테고.

 

 

같은 반에 철수가 있다는 걸 아는 것과 그 철수가 왕따를 당해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고통스러워 한다는 걸 아는 건 다른 것처럼, 옆집 아이가 밤마다 시끄럽게 운다는 걸 아는 것과 그 아이가 밤마다 부모로부터 끔찍한 학대를 당해 비명을 지른다는 걸 아는 건 다른 것처럼, 외국인이 미소를 지으며 뭐라 말한다는 걸 아는 것과 그 외국인이 킬킬거리며 욕설을 내뱉고 있다는 걸 아는 건 다른 것처럼,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관계가 달라질 수 있겠지.

 

 

그래 앎. 앎이라고 표현해도 되고 관심이라 표현해도 될 것 같아. 사랑이라 해도 괜찮을 것 같아. 관심이 앎을 도모하는 거고, 그 과정을 사랑이라고 나는 생각하거든. 그래서 사랑과 증오가 닮은 구석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 사랑하는 이라면 사소한 것까지 관심이 가고, 모든 걸 알고싶어하는 것처럼 증오 역시 그렇잖아. 물론 관심가고 알고싶어하는 건 상대의 약점과 단점에 국한된다는 게 다르지만 말이야.

 

 

그래서 외로움은 사랑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앞서 얘기했던 거야. 하지만 대체로는 증오로 극복하려 하지.

 

 


 

아마도 헤르만 헤세가 <데미안>에서 했던 말도 비슷한 맥락일 거야.

 

 

우리가 보는 사물들은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것과 똑같은 것이야. 우리가 마음속에 가지고 있지 않은 현실이란 없어.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토록 비현실적으로 사는 거지. 바깥에 있는 물상들만 현실로 생각하고 마음속에 있는 자신의 세계에 전혀 발언권을 주지 않기 때문이야. 그렇게 해서 행복할 수는 있겠지. 그러나 한 번 다른 것을 알면, 그때부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길을 가겠다는 선택은 하지 않게 되지.

싱클레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길은 쉬워. 우리들의 길은 어렵고. 우리 함께 가보세.”

 

<데미안> p.152/헤르만 헤세/민음사/전영애

 


 

‘우리가 마음속에 가지고 있지 않은 현실이란 없어.’

 

이게 중요한 말 같아. 옳고 그름, 선과 악, 빛과 어둠, 사랑과 증오, 행복과 불행 등 이 모든 건 우리 마음속에 있기 때문에 현실이 된다는 얘기지. 혹은 우리 마음속에 있어야만 현실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말이거나.  

 

 

헤르만 헤세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는 인간의 존재감 갈망에 대한 매우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줘.

 

 

유복한 집에서 나고 자란 싱클레어는 동네 불량일진 크로머와 어울리면서  일찌감치 인생의 쓴맛을 보게 돼.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야. 동네 소문난 과수원에서 훔치지도 않은 사과를 자루째 훔쳤다고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한 거지. 물론 거짓말이 거짓말로 끝났으면 내가 이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을 거야.

 

 

싱클레어의 사과 절도 무용담이 거짓이란 걸 알아챘기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우연의 일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부터 크로머는 주인공을 협박하기 시작해. 동네 과수원에서 사과 도둑에 대한 현상금을 걸었는데 친구를 고발할 수는 없으니 대신 네가 현상금을 자기한테 줘야겠다고 말이야. 너는 어차피 부잣집 아들이니 그 정도는 별 거 아닐 테고, 그러지 않으면 나는 가난해서 돈이 필요하니 어쩔 수 없이 너를 신고할 수밖에 없다고 협박을 했던 거야.

 

 

그때부터 주인공에겐 지옥이 펼쳐지지. 주인공이 집안의 돈을 어렵게 훔쳐 갖다 주지만 크로머의 협박은 거기서 끝나지 않거든. 돈을 더 요구하고 심지어는 누나를 데리고 나오라는 요구까지 해.

 

 

그래서 누나는 어떻게 됐는지 궁금한 독자가 있을 것 같아. 궁금한 사람은 직접 읽어보길 바래.

 

 

중요한 건 싱클레어가 왜 그런 불필요한 거짓말을 했을까에 있어. 그렇잖아.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고 발뺌하는 오리발 내밀기성 거짓말도 아니고 저지르지도 않은 나쁜 짓을 뒤집어쓰는, 온통 손해 뿐인 거짓말을 대체 왜 했냔 말이지. 심심해서? 친구들을 놀리려고?

 

 

아닐 거야. 존재감에 이익이 된다 생각했기 때문일 거야. 비록 불량써클 비슷한 동네 악동들 모임이지만 그 집단의 다수 구성원이 원하는 바에 부응함으로써 아이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호의적으로 인식해주기를 바랬기 때문에 그런 거짓말까지 동원했을 거라는 얘기야. 마치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을 외친 양치기처럼 말이지.

 

 

다시 말해 주인공은 무시받기 싫었던 거야. 한 번도 나쁜 짓을 해본 적 없다는 게 이 집단에서는 무시당할 뭔가였거든. 별걸 다 무시받기 싫어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주인공에게는 별 거 아닌 게 아니었어. 왜냐면 이건 헤겔이 말한 ‘인정투쟁’의 문제기도 하거든.

 

 

<정신현상학>/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임석진/한길사

 

 

구성원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 설령 악한 구성원들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 속해있는 한 인정받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말이야. 아직 어려서 어떤 사람한테 어떤 일로 인정 받아야할까의 문제는 생각 못하고 그냥 어디서든 인정받는 존재가 되고 싶었던 거지.

 

 

그래서 주인공은 거짓말을 거짓말이었다고 말하지 못했던 것 같아. 그렇다면 왜 거짓말을 했느냐 보다 왜 거짓말을 거짓말이라 고백하지 않았냐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어.

 

 

거짓말을 한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쳐도, 애초 모든 게 거짓말이었다고 고백만 하면 크로머의 협박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던 거였어. 크로머한테 고백하기 싫다면 부모님한테 얘기해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고 말이야. 하지만 싱클레어는 그러지 않았지. 아니 대체 왜?

 

 

거짓말을 고백해 악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그런 거짓말로 허세를 부렸다는 사실이 들통나는 게 더 싫었기 때문이겠지. 악의 구렁텅이에서는 고통 받는 순교자라도 될 수 있었지만 고백 후의 현실에서는 관심 받기 위해 안 한 도둑질까지 했다고 꾸며낸 머저리 병신밖에 될 수 없었을 테니 말이야.

 

 

바꿔말해 사과도둑으로 협박 당하는 존재에게는 동정 받을 가능성이라도 있었지만 사과를 훔친적 없는 선량한 허세쟁이에게는 오직 비웃음만 예상될 뿐이었다는 거야. 그러니 싱클레어가 덜컥 겁을 집어먹을 수밖에. 그렇잖아. 무시받기 싫어서 거짓말을 했던 건데, 그게 다 거짓이란 걸 고백하는 순간 거짓 이전의 무시보다 더 큰 무시가 돌아올 게 뻔하잖아.

 

 

그래서 싱클레어는 거짓을 말하고 침묵을 고집했던 게지. 자기의 존재감을 보호하기 위해.

 

 

너무 어려서 거짓말이 나쁘다는 걸 몰랐을까?

너무 놀라서 크로머의 협박에도 입을 열지 못했던 걸까?

실망한 부모님은 자기를 도와주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걸까?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어. 무엇이 옳고 무엇이 합당한지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래도 나쁜 짓을 불사했고 고통을 감내했던 것일 수 있다는 거야.

 

 

왜냐면 싱클레어에게 선과 악의 문제는 존재감 다음의 문제였으니까. 선과 악의 문제는 존재감을 위한 전략적 선택의 문제였을 뿐이니까. 즉 싱클레어는 애초 선한 존재도 아니었고 악한 존재도 아니었지. 다만 매 순간 보다 그럴싸해 보이는 존재감을 추구한 외로운 존재였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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